美성년 - Hutari ver.2

나는 절대 너를 놓지 않을거다.

그것이 어떤형태가 되었든, 네가 없는 나는, 내가 없는 너는 상상할 수 없으니까.

지독하다고 해도 좋아. 이기적이라고 해도 좋다. 네가 나를 놓는다 해도 나는 절대 놓지 않을거다.

“시간되면 나와. 밥이나 먹자.”


너를 너를 너를


얼마만에 보는 얼굴인지 모르겠다. 아니, 이전부터 못해도 1년에 한번씩은 보았지만, 이제야 겨우 주위 눈치 볼 필요 없이 ‘그’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더는 주위 시선에 어색해 하지 않아도 되고, 더는 그가 나의 입장을 의식하고 배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여기까지 오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던가. 얼마나 먼 길을 돌아왔단 말인가. 사회와 떨어져있던 그 시간을 지나 다시 그를 보았을 때, 가진걸 모두 버려서라도 그를 놓으려고 했던 예전 그 노력들이 모두 괜한 짓이었음을 나는 인정해야 했다. 그리고 나는 결국 그를 ‘친구’라는 이름으로라도 곁에 묶어두기로 결심했다. 이전의 관계로 돌아가는데 시간이 걸리겠지만, 아니 어쩌면 두번다시 이전과 같은 무게의 ‘친구’로 돌아가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같은 그룹의 동료, 멤버라는 울타리가 사라진 지금, 오직 그것만이 그의 곁에 남는 유일한 길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 유일한 방법이 내 숨통을 조여오기 시작했다. 그를 향한 이 마음을, 이 감정을 버리지 않고 온전히 가슴에 품은 채로, 이전과 같은 얼굴을 하고 내 곁에 있는 그와 이전보다 못한 관계로 살아간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괴롭고 잔인한 일이었다. 전엔 아무렇지 않게 했던 그와의 가벼운 포옹조차 지금의 내게는 허락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나와 만날때면 그의 얼굴에 이전엔 볼수 없었던 어딘가 복잡한 무언가가 한번씩 스쳐지나가곤 했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어?”

“표정이 안좋은거 같아서.”

“….아냐- 일은 무슨. 아, 어디까지 했었지?”

“여기. 미안하다고 하는 부분.”

그는 아무렇지 않은척, 이전과 다름없는 얼굴과 행동을 가장하고 있었지만 내 눈에는 확실히 보였다. 제아무리 내가 그동안 그를 놓으려 발버둥을 쳤어도, 일부러 그를 외면했던 시간이 있었음에도 그럼에도. 지금 상황이 이렇게 되었다 해도, 숙소에서 그와 하루 24시간, 동고동락했던 시간이 자그마치 7년이었다. 좋든 싫든 아침에 눈떠서 잠들때까지 얼굴을 마주했던 사이였는데 모를리가 없었다. 모를수가 없는거다. 아마도 그는 내가 몰랐으면 할 것이다. 어쩌면 그 자신도 모르게 나타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그의 그런 변화를 눈치챘다는 사실을 그도 알고 있으리라. 하지만 나는 나의 연기력을 발휘해 모르는척 넘어가야 했다. 별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인건 나도 마찬가지니까.

그는 나와 마주하고 있는 이 상황을 아주, 매우 어색하고 불편해 하고 있었다. 젠장.

그런 그를 알면서 모른척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그를 만나면 만날수록,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고통을 겪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여전히 그는 나를 향해 화사한 미소를 지어주고, 세심히 챙기는 다정함을 보여주어 나를 행복하게 해주었지만, 한번씩 불현듯 스치는 그 무언가가 나를 순식간에 지옥불로 쳐넣는 것이다.

난 결국 또 그에게서 거리를 둘 수밖에 없었다. 그와 만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 그를 떠올릴 시간조차 없애기 위해서 닥치는 대로 시나리오를 받아들었다. 도망치는 거라고 해도 할말은 없었다. 자연스레 그와의 만남은 줄어들었고 먼저 연락이라는걸 잘 하지 않는 그의 성격덕에 연락하는 횟수 또한 자연히 줄어갔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그 말이 내게도 적용되기를, 그때의 나는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얼마못가 나는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이었는지 깨달았다. 그를 마음에서 몰아내려던 나의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를 향한 마음에는 변함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보지 못했기 때문에 더욱 커진듯도 했다. 그러나 내가 이를 깨달았을 때는 이미 나의 바보 같은 짓 때문에 ‘친구’보다도 못한 사이가 되어 있었다. 게다가 이젠 내가 이전처럼 아무렇지 않게 그를 대할 자신이 없었다. 씨발. 이게 뭐야.

“왔구나, 형!”

“그래도 태우 결혼식은 보러 왔네? 바빠서 못오나 했더니. 매정한 놈. 내가 연락 안한다고 너도 연락안해?”

“…막내가 결혼한다는데 와야지… 그리고 나 바쁜거 알면 니가 먼저 연락 좀 해봐라. 근데.. 내가 와도 되는 자린지 모르겠다.”

처음에 태우한테서 청첩장을 받았을때는 정말 놀랐다. 다른 사람도 아닌 태우가 제일 먼저 가다니, 아마 내 얼굴표정은 멤버들이나 팬들이 자주 말하곤 했던 무념무상의 얼빠진 얼굴이었을거다. 결국 놀라움과 부러움, 배신감이 한데 뒤섞여서 참 얼떨떨한 심경으로 축하한다고 말했었다.

청첩장을 받을 당시에는 당연히 가야지! 했었지만, 막상 결혼식 당일 아침 현관 앞에 서서 수도 없이 망설였다. 내가 가도 되는걸까? 하고. 그런 걱정은 결혼식장에서 멤버들과 마주한 후에도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내가, 감히 이자리에 있어도 되는걸까.

그런 나의 고민을 알기라도 하듯, 그가 주먹으로 내 팔뚝을 툭 치며 말했다.

“야, 당연히 와야지! 오면 안될건 또 뭐야. 우리가 원수진것도 아닌데. “

“형 여기 온다고 아무도 뭐라고 안해. 누가 윤계상한테 뭐라고 해? 그리고 안 오면 우리가 가만 안 있지.”

장난스레 웃어보이는 호영이의 얼굴이 그 옛날 내가 천사라 칭했던 그 모습 그대로라 놀라면서도 조금 마음이 놓였다. 그동안 그 얼굴을 전혀 안보고 살았던 것도 아닌데 새삼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심하다니, 거부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어지간히도 대단했었던 것 같다. 하아, 어쩌다 그지경이 된거지?

잠시 우리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확실히 태우가 없으면 그다지 시끄러워질 조합은 아니었으니까. 예전부터 우리들 사이에서 분위기를 띄우는 역할은 언제나 녀석이 도맡아 해왔었다. 녀석이 막내이기 때문인 것도 있었지만, 녀석이 나서지 않으면 다들 묘하게 가라앉곤 했던 탓에 언제나 녀석은 우리에게 돌아가며 장난을 걸어 분위기를 누그러뜨리곤 했다. 하지만 그날 녀석은 결혼식의 주인공이자 한 여자의 남편이 될 당당한 새신랑이기에 그 역할을 다할 수 없었다. 새끼, 덩치만큼이나 존재감도 크다니까.

우리 사이의 어색한 침묵을 깬 것은 호영이의 전화벨소리였다.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발신자를 확인한 호영이는 이때까지보다 더 환히 웃으며 결혼식 시작 전까지는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떴다. 표정으로 보아 애인 전화가 아니었나 싶다.

둘만(주위에도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어쨌든 마주하고 있었던건 나와 그, 둘뿐이므로) 남은 자리에는 여전히 어색한 침묵뿐. 내가 고의적으로 그를 피하기 시작한 후로는 둘이서만 대화를 나눌 일이 드물었기 때문에 선뜻 먼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떤 말을 해야하지? 전에는 어떤 얘기를 했었는지 잘 기억이 나질 않았다. 내가 이렇게 멍청한 새끼였나, 왜 하나도 기억이 안나 젠장. 괜한 긴장감에 입술이 바싹바싹 마르는 것 같았다.

“담배나 한대 피울까?”

나와 눈을 마주치며 그렇게 말하는 그의 얼굴에서는 예전과 같은 어색함이나 불편함이 전혀 느껴지질 않았다. 그때의 너는 왜 그랬냐고, 도대체 너에게 무슨일이 있었던 거냐고, 그렇게 따져묻고 싶은걸 간신히 억눌러 참았다. 나는 더 이상 그의 모든 것을 공유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기억을 더듬던 중, 한가지 사실을 떠올렸다. 그래. 사실 그동안 그를 전혀 만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내가 그를 밀어내는 노력을 또다시 포기한 이후, 주연 영화 개봉전 VIP 시사회에 어렵사리 그를 초대했었다. 연기를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었기때문에 바빠서 못올수도 있겠다 싶어 큰 기대는 하지 않았었다. 그리고 시사회 시작하기 얼마 전, 도착했다는 그의 연락을 받았고 시작 전까지 어느정도 여유가 있어 시사회장 근처 커피숍에서 따로 만났다.

커피숍 야외 테라스에 마주 앉아있자니 어느새 주위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확신이 서지 않는듯, 어? 어? 하고만 있던 사람들이 점차 그와 나의 이름을 부르면서 핸드폰이며 카메라를 꺼내들고 우리의 모습을 찍기 시작했다.

그 덕분에 가뜩이나 묘한 기류가 흐르는 그와 나 사이는 더욱 편치 못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나야 이제와선 그런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편하게 있을수 있게 되었지만, 역시나 그는 여전히 사람들의 시선과 카메라를 의식하는지 완전히 편한 태도를 취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 이렇게 앉아 있으니까 좀.. 어색하네.”

“…그래?”

“응. 그냥 좀…….한동안 뜸했으니까 괘씸해서 혼내주려고 했는데 너, 엄청 바빠보이더라. 마음이 넓은 내가 봐줘야지 뭐.”

“어이구. 고마워 죽겠네. 그러는 너도 바빴던거 아니야? 연극 했다고 들었는데. 보러 못가서 미안하다.”

“어? 으응. 괜찮은데… 나 연기 한번 해보려고. 내가 전에 너한테 얘기 안했었나? 너 연기하는거 보니까 참 대단하다 싶기도 하고, 연기라는 것도 괜찮은 거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 근데 진짜 어렵더라.”

솔직히 그가 연기를 시작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적잖이 놀라긴 했지만 내심 한편으로는 ‘드디어’라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콘서트나 활동 중간중간 시트콤에 특별출연하면서 연기를 할때면, 나는 늘 그를 보며 놀라고, 또 자극받곤 했다. 그는 나라면 할수 없을 그런 역할들까지도 척척 소화해냈고, 무대에서, 하다못해 음반을 녹음할때조차 그는 내가 낼 수 없는 다양한 감정, 감성을 가지고 모든 것을 표현해내었다. 그래서 나는 늘 그에게 농담 반, 진담 반을 섞어 말했다. ‘넌 연기를 했어야 했다’고.

지난 1년여동안의 연극경험을 이야기하는 그의 눈이 전과 달리 무대위에서 거친 숨을 고르면서도 활짝 웃던 그때처럼 반짝반짝 생기있게 빛나고 있어서 마음이 놓였다. 그래, 그는 그 누구보다도 화려한 무대위가 가장 어울릴 사람이고 죽어도 무대에서 죽을 사람이었다. 그의 인생에서 무대를 잃어버렸을 지난 시간동안 그는 죽어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를 마주하자 저절로 올라가는 입꼬리를 더 이상 숨기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아니 사실은 숨길래야 숨길수도 없게 되어버렸기 때문에 이미 포기한 상태였다) 그의 얘기에 맞장구를 쳐주거나 하며 마음껏 웃었고, 그도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편해지는지 처음보다 표정이 많이 누그러져갔다.

그를 따라 비상구 한켠에 마련된 흡연구역에 서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내가 그토록 노력해도 끊을 수 없었던 두가지가 바로 이 담배와 그였다. 끊어보겠다고 독하게 마음먹고 갖은 지랄을 다 떨며 참아내다가도 한번 손대기 시작하면 하염없이 빠져드는 것이 담배나 그나 꼭 같았다. 안좋은 건줄 알면서도 지금까지 끊지 못하고 계속하는 것 조차도.

폐 깊숙히 차올랐다 허공으로 내뱉어져 사라지는 담배연기에 가슴이 쓰렸다. 내 심장을 가득히 채우고 있는 그 마음을 조금씩, 수도 없이, 내버려도 보고 토해도 보았지만 그 끝에 남는건 지독한 고통과 고독이 주는 허무, 그것뿐이었다. 어차피 그는 내 속이 썩어 문드러져 가는 것 따위, 죽을때까지 모른채 내 곁에 ‘베스트 프렌드’로 남아있을텐데.

“…태우는 만났어?”

로비에서와 달리 차분히 가라앉은 그의 목소리에 상념에서 벗어나 그를 보았다. 나와 나란히 벽에 기대서서 가만히 허공을 응시하며 천천히 담배연기를 뱉는 그의 옆모습이 마치 손대면 그대로 부서져 내리는 정교한 크리스털 조각처럼 눈부시게 아름다워서, 그 목소리가 환청처럼 여겨질 정도였다.

“아까 잠깐. 정신없어 보이길래 인사만 하고 왔다. 새끼, 입이 아주 귀에 걸렸더라… 쭌이형은? 입구에서 만나긴 했는데.”

“여기저기 인사하느라 바쁜가봐. 오랜만에 한국 들어온거라서. 아- 진짜 우리중에 걔가 제일 먼저 갈줄은 몰랐는데. 내가 곰팅이한테 밀리다니!”

“그래서, 부럽냐?”

“야, 그럼 넌 안 부러워? 스무살 넘을때까지 키스도 못해본 곰팅이가 우리 다 제치고, 심지어 쭌이형까지 제치고 속도위반으로 장가간다는데? 아~ 나도 결혼하고 싶다!”

그제서야 그는 한껏 억울하다는 표정을 하고 나를 보았었다. 사람 얼굴 빤히 보는 버릇은 여전한 녀석. 언제나 그랬다. 녀석은 아무 의미없이 그저 버릇대로 던지는 시선일 뿐인데, 나는 그것이 버릇임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매번 그 시선에 손끝 저릿한 무언가를 느끼곤 했다. 물론,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그놈의 시선에 면역이란 생길래야 생길수가 없나보다. …씨발, 당연하지.

“…결혼할 여자는 있고?”

내딴에는 정말 신중히 한 질문이었다. 정말로 그에게 여자가 있는건지(없다고 어떻게 해볼 생각은 감히 할 수 없지만) 궁금했으니까. 다만 절대 그런 티를 내지 않기 위해 최대한 애를 썼다. 나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는지, 그는 눈치채지 못하고 그저 눈을 가늘게 뜨더니 담배를 쥐지 않은 한쪽 손을 들어 내 목을 휘어감고 흐흥, 하며 코로 웃음을 삼켰다. 그럴땐 내가 배우라는 사실이, 그래서 표정을 감출수 있음에 감사했다..

“친구야. 꼭 그렇게 물어봐야 아냐? 응? 아까 호영이 못봤냐고. 눈치없는 놈. 여자라도 있으면 억울하지나 않지! 아니 대체 내가 왜? 곰팅이보다 내가 어디가 그렇게 빠지길래, 천하의 안데니가!”

“뭐.. 곰팅이보다 빠지는데가 전혀 없는건 아니지. 특히 너의 그 불치병은.. 어우.”

“불치병?”

“첫번째는 지독한 왕자병이고, 두번째는 진영이형도 두손 두발 들게한 음ㅊ….”

“뭐 임마?!”



*****


벌써 몇년을 안하던 춤과 노래를 이제사 다시 한다는것은 상당한 용기와 체력을 필요로 하는 법이다. 한창 콘서트연습을 하다 잠시 휴식시간이 생겼고 담배나 태울겸 나간다는 녀석을 놓칠새라 뒤따라 나섰다. 연습실 안의 후덥지근한 공기에서 잠깐이라도 벗어나고 싶었고, 아직 녀석과 하지 못한 말들도 많았으니까. 밖으로 나가면서 서로 옛날엔 어쨌네 저쨌네 추억담이며 과거사를 끄집어내 이야기했지만, 어딘가 뭉뚱그려진 기분을 떨칠수가 없었다. 가장 중요한 무언가는 계속해서 피하고 있는 그런 느낌. 새삼 녀석의 얼굴을 본다. 까만 눈을 본다. 옛날에도 한번 느꼈었던 그 기분이다. 녀석은 여기에 있지만 여기에 없는것만 같다. 항상 저 먼곳 어딘가를 보고 있지.

“난 아직도 모르겠다. 니가 무슨생각을 하는건지.”
“아는게 더 이상한거 아닌가? 니가 내 머릿속에 들어갔다 나온것도 아닌데.”

매정하긴. 녀석의 말이 틀린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자꾸만 녀석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언제나 다 내어줄듯 다 보여줄듯 하는 녀석이지만, 실은 선을 그어놓고 그 안의 것은 절대 보여주지 않는다고. 그러면서 눈으로 늘 “난 너를 알아. 이해해” 라고 말한다. 불공평하다. 내가 짊어졌던 무게를 알고 있다면 제가 짊어진 무게도 알려주는게 공평하지 않냔 말이다. 그래서일거다. 녀석과 눈이 마주칠때마다 이유없이 가슴이 울컥거리는 것은.

“너도 하나 줄까?”
“아니, 나 끊을거라니까.”
“아 맞다.”

머쓱한듯 한번 웃고는 나를 향해 내밀었던 담배갑을 주머니에 구겨 넣는다. 그리곤 말없이 제 입에 문 담배에 불을 붙이고 짧게 들이마셨다 내뱉는다.

“사랑이 진짜 무섭긴 하구나. 니가 담배를 다 끊는다고 하고.”
“그런거 아냐 임마. 이제 건강도 좀 생각해야 될 나이잖냐.”
“그래. 오래 살아야지. 건강하게 살아야 결혼도 하고 애도 낳고.”

어색한 침묵. 녀석이 이렇게 나올때면 나는 어째야 할지 모르겠다. 어떤 의도로 그런 말을 하는건지 20대였던 그때나 30대인 지금이나 알수 없긴 마찬가지다. 그러니 그저 속수무책으로 당할수밖에. 녀석은 나를 탓하고 싶은걸까. 그사람을 사랑한다 말하는 나를.

“…그러고보니, 결혼은 안해?”
“..어어? 어….아직 생각 없는데..”
“뭐야- 도대체 언제 하려고. 니생각만 하지 말고 제수씨 생각도 해야지 임마. 너무 늦게 하면 여자만 힘들다.”
“사돈 남말한다.”
“난 당장이라도 하고 싶은데 짝이 없는거지. 아, 생각하니까 또 외롭다야.”

외롭다는 말과 함께 녀석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마치 추위라도 타는양 제 양팔을 문질러댔다. 사실 결혼이란 단어는 나보다도 녀석에게 더 요원한 일이다. 나와는 달리 딱히 만나는 사람도 없으니까. 
다만 매번 ‘외롭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것에 비해 연애를 하지 않는 기간이 너무 길다 싶다. 진짜로 누구를 만날 생각은 있는건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소개팅이라도 시켜줄까.”
“…어어? 그럼 나야 고맙긴 한데… 아, 아니다. 관둘래. 서른중반에 무슨 소개팅이냐. 이젠 소개팅 아니고 선을 봐야지. 안그래?”
“..그럼 말고.”
“야, 예의상 두번은 물어봐야 되는거 아냐?”
“그러게.”

녀석이 한마디 할때마다 가슴이 크게 요동친다.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녀석이 소개팅을 거절하는 이유는 예전과 다르긴 하지만. 녀석의 거절하는 한마디에 내심 마음이 놓이는 나는 나쁜놈인가. 
사실 녀석과 나를 아는 주변사람들로부터 종종 듣는 말이 있다. 혼자만 재미보지 말고 녀석한테 다리라도 하나 놓아주라는 말. 그럴때마다 이제는 적당히 웃으며 얼버무리곤 한다. 그리고 배우 윤계상 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 그 옛날 20대의 윤계상은 얼굴에 고스란히 감정이 드러났을테니.

“뭐해? 가자. 땡땡이친다고 잔소리하겠다.”

잠시 생각에 빠져있던 나를 현실로 부르듯 담배꽁초를 버린 녀석이 내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정신을 차렸을땐 이미 나를 두고 저만치 앞서가는 녀석의 뒷모습만이 보였다. 속이 시리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이따금씩 내 가슴 한켠을 짓누르는 이 감정을, 이제 녀석에게서는 흔적도 찾아볼수 없게 되어버린것일까. 녀석은 이미 깔끔하게 잘라내었는데 나만 아직도 질질 끌고 있는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헛웃음이 났다. 누가 보면 대단한 순애보인줄 알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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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 단편으로 쓰려고 했었던 동일한 설정의 조각글을 이어붙임...

윗단락은 원테이블을 보고, 아랫단락은 아마도 콘서트에 다녀와서 썼던것 같다.

나름? 리얼물로 쭉 시간에 따라 사건들을 써가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아마도 왠지 못쓰겠구나 싶어 정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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